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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을 넘어] 교회여성연합회에서 행한 ‘한국교회 개혁운동을 위한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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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beyondit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6,235회 작성일 08-07-03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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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여성연합회에서 행한 ‘한국교회 개혁운동을 위한 제언’

90년대 이후 한국 교회에서는 세속화 현상이 만연하였다. 초대형 교회들이 대거 등장하여 세속적 성공을 하나님의 사랑과 동일시하면서 교회 세습, 교단정치가 일반화되었다. 한국교회의 세속화는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을까? 정말 한국인의 종교의식 속에 있는 기복성의 탓일까?

개신교는 서양의 근대정신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탄생하였다. 근대 계몽주의자들은 인간이 이성적 존재라는 확신으로 개인의 이기적 욕망을 긍정하였으며, 이러한 생각은 약육강식의 자유가 곧 문명적 진화·진보의 원동력이라는 견해로 확장되었다. 개신교를 성립시킨 종교개혁은 중세의 보편적 종교권력에 대항하기 위해, 지방 권력으로서의 근대 국가와 손을 잡고 정교분리를 타협점으로 하여 성립되었을 뿐만 아니라, 근대국가의 이념을 긍정하였다. 교회에 대한 면세는 그 타협이 야합적 수준이었음을 입증하는 사례라고 할 만하다.

실상 근대국가의 이념은 여러 면에서 기독교적 전통과 상충되었지만, 정교분리-영육구분의 관점에서 문제시되지 않았다. 정치는 ‘육’의 세계를 지배하고, 종교는 ‘영’의 세계를 지배하자는 타협은 ‘영’의 의미를 변질시킨 데서 출발했다. 이기적인 ‘육적’ 욕망을 원죄로 규정한 ‘영적’ 전통은 애써 무시되었으며, 약육강식에 의한 현실적인 성공조차 축복의 결과로 인정되었다. 소외자에 대한 사랑과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정신은 단지 현실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뜻에서 영적인 의미만을 가졌다. 성서적 전통을 따른다면 세상의 현실에 대한 지극한 관심을 가져야할 교회가 정교분리를 승인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그 관심의 방식이 세속적 관점이 아니라는 뜻에서 영적이어야 했을 일이었다. ‘영’의 대립어는 ‘현실’을 의미하는 ‘육’이 아니라, ‘세속성’을 의미하는 ‘육’이며, 현실에 대한 가치론적, 신앙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개신교가 근대국가와 타협하기 위하여 스스로 설정한 영적·정신적 영역에서 최대의 콤플렉스는 ‘이성’을 내세운 합리주의에 있었다. 창조론과 같은 근본주의적 입장은 이런 고집을 전제해야 스스로 이성적이라고 자임할 수 있었던 데 기인한 웃지 못할 희극(안습!)이었다. 합리주의는 사실을 탐구하는데 있어서의 탁월한 효용성에도 불구하고, 많은 한계를 안고 있는 사고 방식임이 분명하다. 도구적 합리주의의 위험성에 대한 통찰과 ‘우연’에 대한 과학적 통찰, 그리고 포스트 모더니즘의 통찰이 그 한계를 말해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적어도 인간의 삶의 영역에서 합리주의가 얼마나 무력한 것인지는 우리의 삶의 경험이 웅변하고 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합리주의에 대해 콤플렉스를 가져야 한단 말인가? 기독교의 영적 전통은 합리주의를 포괄하며, 그 한계를 이미 넘어선 것이었다. 근대주의에 사로잡힌 개신교의 불쌍함이여!

우리는 이성이 도덕적 판단을 만들어 내리라고 믿었던 계몽주의자들의 꿈이 깨지고, 오히려 그것이 양육강식의 도구가 되고 있는 자본·기술 지배의 시대를 살고 있다. 지금은 자본이 기술을 만들고, 기술이 자본을 만들어 공고한 지배체제를 이루고 있는 시대이다. 그것들이 법인(法人)으로써 인간 대우를 받는 단계를 지나, 대기업·다국적기업이 되어 사람들 위에 신처럼 군림하는 시대이다. ‘성공’이란 이 신의 집사,장로,목사가 되는 일이니, 우상을 섬기는 일임에 분명하다. 여기에서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는 세계, 예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찾을 수 없음도 분명하다.

이런 것을 느끼고, 알게 되는 것이 영적 각성, 영적 깨달음이다. 그러므로 성의 불평등을 느끼고 성 평등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시대의 영성이다. 촛불을 들고 생명의 존엄함을 호소하는 것이야말로 영성적 실천이다.

근대국가권력과의 야합을 통해 성립한 종교개혁이라는 짝퉁 혁명이 부러운가? 그보다는 끊임없는 영적 각성을 일궈 온 수도원 운동을 바라보자. 어설픈 혁명으로 권력을 쥐려하기 전에 우리 자신의 내면에 어떤 영적인 빛이 있는지부터 살피고, 우리 내면의 촛불을 켜자. 그것이 우리의 진정한 기쁨이라면 이웃의 가슴에도 촛불을 붙일 것이다. 그리고 온 나라에 촛불이 켜지는날 진정한 혁명이 올 것이다. 오! 하나님의 나라여!



                                                                                            -임건묵(너머서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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