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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11] 풀뿌리여성포럼 인생의 맛 역량강화 <인생의 맛 : 글쓰기강의 >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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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eyondit 댓글 0건 조회 8,536회 작성일 19-09-03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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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모임을 통해서 추억의 맛을 떠올려보는 시간을 갖도록 했습니다.

글을 쓰는 방법을 이론적으로 풀어낼 필요도 없이, 참석자들 모두 자연스럽게 글을 썼고 모든 글에서 각자의 개성이 잘 드러났습니다.

더불어, 주제와 연관해서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의 추억과 성장 배경 등을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었습니다.

 

글쓰는 방법에 관해서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인, ‘말하지 않고, 보여주기기법을 공유했습니다.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을 쓸 때 재미를 주려고 한다면,

설명 보다는 장면을 선명하게 볼 수 있게 그림을 그리듯 보여주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그 훈련으로 먼저 자신이 어린 시절 살던 동네 지도를 그려보고,

지도를 보며 떠올릴 수 있는 음식에 관한 기억이나 장면, 추억 등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각자 자신의 집 내부 모습이나, 동네 풍경 혹은 방안의 모습을 떠올려보고

그림을 그린 다음에 그에 관한 글쓰기를 해보았는데 모두 자신만의 소중한 추억들을 글로 재밌게 풀어낼 수 있어서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낭독한 것을 듣는 것도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글을 내용을 통해 각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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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영 어릴 적 살던 집 마당에서 자라던 포도나무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해서

순영 쌤 동생이 한동안 탕진에 빠져있던 원인을 듣게 되었고,

엄마의 무조건적인 사랑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수경 쌤의 사루비아 이야기, 석류 이야기에서 어릴 적 우리 주변에 있던 흔하고 예사롭게 보던 식물들을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복남 쌤은 사택 부지에서 장사를 하던 뽑기 아저씨,

함께 세 들어 살던 사람들,

얇은 벽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살았던 신혼부부들,

툇마루에 함께 둘러앉아서 음식을 나누어 먹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집을 세우고 만드는데, 아버지 보다는 어머니께서 더 많은 일을 하셨던 것이며

그렇게 세운 집을 다시 짓고 그곳에 남동생이 살면서 생활을 이어가는 이야기며,

마치 소시민의 일대기를 잔잔하게 써내려 간 글을 읽는 것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연경 쌤의 뽑기 이야기는 모두에게 어린 시절 한 번씩 저질렀던 사고의 추억을 되살릴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어린 시절 많이 먹던 불량 식품도 생각이 났습니다.


해인 쌤의 이야기는 엄마와 아빠의 기호의 차이,

그리고 두 분의 기호를 존중해서 하는 외식 이야기가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첫 월급을 타서 녹원쌈밥집에서 혼자 밥을 먹었던 것이 감격스러웠다는 대목도 인상 깊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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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우리 모두 각자 어리지만 자기 자신으로 살던 시절에 먹었던 것들에 관한 이야기들은,

지금 성인이 되어서 원하든 원치 않든 나를 제외한 타인의 밥상을 걱정하고 차리게 되면서 끼니를 챙기는 것이 노동으로 치환되어 버렸고,

더불어 무언가를 먹는다는 것의 의미가 많이 바뀌게 된 것을 좀 더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추억을 준 그 음식들이 누군가의 희생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으면 하는 생각에서, 앞으로의 대안을 고민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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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인의 글

호로록. 가느다란 면이 내 턱을 톡톡 쳤다. 우리 집에서 제일 가까운 국수집. 싸고 양이 많아 아빠가 제일 좋아한다.

방학이 되는 때면 어김없이 국수집에서 국수를 먹는다. 요즘은 내가 통 내려가질 않아서 잘 가지 않는다.

국수집이 있는 큰 도로를 벗어나면 종합시장이 있다. 거기는 내가 정말 좋아한다.

구수한 김밥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우리는 많고 많은 김밥집 중에 단골집으로 들어간다.

햄이 짭짤하고 참기름이 듬뿍 듬뿍 발리고. 밥이 쫀득한 단골집. 시장 안에는 김밥뿐만 아니라 만두, 핫도그, 죽 집도 있다.

다 맛있지만 나는 엄마랑 싸운 날 아빠가 사준 시장 김밥과 칼국수를 잊지 못한다.

다시 국수집에서 출발해서, 맞은편에는 곱창집이 있다.질기고 비싸서 딱 한번밖에 가보지 않았다.

거기서 처음 소주를 마셨다. 역하고 찡한 소주와 질긴 곱창이 어떤 조화를 이루는지 나는 아직 모르겠다.

우리 동네에서 멀리 떨어졌지만 자주 가는 곳은 라라코스트다. 사실 나랑 아빠는 잘 가려하지 않는다.

럭셔리한 엄마가 라라코스트에 가자고 얘기한다. 외식을 할 때면 아빠는 항상 삼겹살, 엄마는 라라코스트에 가자고 한다.

나도 삼겹살을 더 좋아하지만, 자주 뭉치지 않는 우리 가족과 예쁜 공간에서 식사하고 싶은 엄마의 마음을 잘 알기 때문에 라라코스트를 자주 가곤 했다.

아아 이번에 내려갔을 때도 가겠지?

 

 

2. 수경의 글

어릴 적 엄마는 거의 매일 토마토를 간식으로 주셨다. 아빠가 후식으로 드실 때는 소금을 쳐 드셔서 충격이었다.

'짠데 왜 소금을 뿌려먹지?'라고 생각한 나는 "아빠 맛있어요? 소금 친 게 더 맛없을 거 같은데"라고 물었다.

그런데 한번 먹어보란 아빠 말대로 먹어보니, 신기하게 안 짜고 맛있었다. 인생의 맛이란 건 아니지만,

소금이 단맛을 더 느낄 수 있게 해준다는 걸 깨달았으니 사는 데 도움이 된 것 같다.

동네 화단에 있던 사루비아도 친구, 언니들이랑 서로 먹겠다고 찾아봤는데 길기 긴 사루비인에 달린 개미를 떨궈내고 쪽 빨아먹으면 달콤했다.

요새는 찾아볼 수 없는 사루비아라서 가끔씩 생각난다. 하나 더 얘기하자면, 석류가 떠오른다.

지금은, 시큼하고 별 맛이 안 난다 느끼는데, 어릴 적엔 과자를 잘 안 사주던 엄마 덕에 누가 석류를 따먹고 있으면 달라붙어서 얻어먹었다.

그때는 남의 집 화단도 우리집 화단마냥 나눠먹어서 옆집 봉숭아로 내 손도 물들이고 옆집 호박잎도 얻어 와서 된장국에 넣어먹었다.

 

 

3. 복남의 글

<한 여름 장대비와 고추장닭죽>

 

시원하게 쏟아지는 빗소리에 눈을 떴다.

시원한 비바람이 뒷곁으로 난 마루문을 통해 불어왔다.

 

, 잘 잤다.”

 

조금 전까지 한 집에 사는 사람들이 모여 닭죽을 먹던 왁자지껄함은 어느새 장대 빗속에 파묻혀버렸다.

엄마는 아침 일을 마친 후 곤로 위에 큰 솥을 올려놓고 닭 몇 마리를 푹 고우시더니 고추장을 풀고 죽을 끓이기 시작했다.

닭살을 쭉쭉 찢어서 섞어가며 솥 한가득 닭죽이 만들어졌다.

붉은색 닭죽은 옆방, 옆방의 옆방, 또 그 옆방 어른들과 아이들이 모여 순식간에 동을 냈다.

내 생일이라고 만들어 준 특별한 음식이었다. 일명 고추장닭죽

 

복남아~ 생일 축하한다. 네 덕에 몸보신 좀 해볼까?”

오늘이 복남이 뒤 바빠진 날이구나.”

, 엄마가 해주신 거죠 뭐.”

 

약간의 부끄러움과 으쓱거림이 느껴졌다. 아버지 생신에 이웃식구들이 모여 축하하고 먹고 마시며 챙길 때 부러웠던 생일상.

그런 생일상으로 차려진 붉은 고추장닭죽이 눈앞에 선하게 떠오른다.

 

 

4. 선경의 글

대문을 열어 준 사람은 친구의 엄마가 아니었다. 시커멓고 커다란 대문을 들어서자 잔디가 깔린 마당이 나왔다.

잔디 위로 드문드문 밟을 수 있는 돌덩이가 놓여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돌 하나하나를 밟으며 친구네 집으로 들어갔다. 친구는 자기 방으로 나를 데려갔다.

친구 방은 우리집에 있는 방을 전부 합친 것 같은 크기였다. 침대도 있고 책상도 있었다.

대문을 열어 준 아주머니가 간식을 가져다주셨다. 쟁반에 놓은 것은 딸기가 들어가 있는 하얀 색 요거트였다.

딸기는 새빨갰지만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처음 맛보는 시큼한 요거트 맛 때문에 얼굴이 찌푸려졌지만 묵묵히 그 간식을 다 먹었다.

그 친구의 이름도, 심지어 얼굴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새빨간 딸기가 정갈하게 손질되어 요거트 위에 올라 간 모양새는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그 시큼하고 당혹스러웠던 요거트의 맛과 함께.

이후 엄마를 졸라서 사 먹었던 요플레의 맛은 친구네서 먹었던 맛과 전혀 달랐다.

항상 어두컴컴했던 우리집 부엌에서 앉은뱅이 상 앞에 앉아서 예쁜 그릇이 아닌, ‘요플레뚜껑을 열고 먹는 그 맛이 같을 리는 없었다.

그래도 한동안 나는 요플레만 보면 내가 가 닿을 수 없는 어떤 세계로 가까이 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항상 그것을 사고 싶어 했던 기억이 난다.

 

 

5. 연경의 글

어린 시절 추억의 맛은 달달한 '달고나'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 집에 가는 길이 아닌 골목을 기웃거리다 발견한 추억의 명소, 인생맛집!

꼬불꼬불 골목길을 어떻게 기억하고 찾아갈지 걱정할 필요도 없이 달달한 달고나 냄새를 따라 찾아가는 곳.

그 시절 용돈을 탈탈 털어서 산 달고나는 세상 그 무엇보다 맛있는 인생의 단맛이었다.

한 번 더 먹을 수 있는 뽑기는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지만~


6. 순영의 글

초등학교 2학년 무렵 단독주택이었던 우리집 마당 한켠에는 포도를 키웠다.

어찌 그런 것이 우리 마당에 알을 맺고 송이를 이루어 뒤덮었는지,어린 마음에 좋기도 하고, 빨리 따서 먹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다.

여름이 깊은 방학 어느 날에 드디어 기회가 왔다. 고무다라이에 물을 가득 담고 포도덩굴 아래서 물놀이를 하던 우리 세 자매는 이제 먹을 만해 보이는

그러나 아직은 파란 포도알을 쳐다보며 침만 꼴깍이고 있었다. 행동대장인 언니가 드디어 말을 꺼냈다.

몇 개만 따먹자! 티 안날거야.

언제나 언니의 말은 왜지 믿어도 될 거 같았던 동생들은 한개만, 두개만 하며 덜 익은 포도를 맛있게 먹어댔다.

뒷일은 생각도 안 났다. 포도가 이렇게 맛있었던가.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먹을 만한 포도알은 하나도 안 보이기 시작했다우리 셋은 불현듯 정신이 들었다.

드르륵!

안방 창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언니와 동생은 고무다라이에서 잽싸게 튀어나갔다.

어벙벙하게 서있던 나는 엄마와 눈이 딱 마주쳤다. 열대쯤 쥐어터지고 난 후, 엄마가 물었다.

"몇 개나 먹었어!"

"모르겠는데요, 엉엉"

"쓰레기통 가서 껍질 수 세어와!"

쓰레기통을 들여다본들 알 수가 있나. 나는 비참한 심정으로 말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냥 제일 많은 수를 가져다댔다. "백 개요"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드디어 엄마의 쌍심지가 꺼지고 허탈하게 웃고는 나를 놓아주었다.

그 뒤로 언니와 동생은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에 없고, 우리집 포도나무는 한 2년 뒤에 병충해 때문에 베어냈다.

지금도 그 쌉쌀하고 뭉근한 덜 익은 포도맛이 한여름 고무다라이에 셋이 물텀벙이며 놀았던 기억과 쓰레기통을 열어보며 느꼈던 절망감과 함께 잊혀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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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경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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